[단독] 질병 솔직히 밝힌 고객에 불이익…황당한 보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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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표준사업방법서상에서의 고지의무 17개 항목들
계약전 알릴의무(고지의무) 사항을 충실히 이행한 계약자가 더 불이익을 받는 이상한 ‘언더라이팅
(Underwriting)’이 논란이다.
언더라이팅이란 보험계약 때 계약자가 작성한 청약서상의 고지의무 내용이나 건강진단 결과 등을 토대로 보험계약의 인수 여부를 판단하는 심사과정을 말한다.
보험사는 보험가입 전에 피보험자에게 청약서의 질문지를 통해 과거 병력이나 현재의 건강상태, 직업, 운전여부 등 보험계약 체결에 중요한 사항을 확인한다. 이때 피보험자는 자신의 위험정도를 보험사에 사실대로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를 고지의무라고 한다.
최근 이미경 씨(가명)는 건강검진에서 유방에 물혹이 발견돼 병원을 찾았다. ‘의학상 문제 없다’는 대학병원 의사의 소견서를 제출한 후 A생명 건강보험에 가입했다. 하지만 며칠뒤 보험약관을 받은 김씨는 ‘유방 전기간 부담보’라는 판정을 받고 깜짝 놀랐다.
유방 전기간 부담보는 유방관련 암이나 질병으로 수술이나 치료시 관련 보험금을 받을 수 없음에도 납입 보험료는 같거나 오히려 더 부담해야 하는 일종의 페널티다.
금융감독원은 2010년 6월 ‘알릴의무 개정 시행세칙’을 공표하면서 용종이나 낭종, 물혹 등 의료행위(입원, 수술, 통원치료 7일이상 등)가 필요 없는 미확정 질병일 경우 고지의무 대상에서 제외했다.
당시 금감원 관계자는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요즘은 기본검사와 정밀검사의 구분이 모호해졌다”면서 “과거 5년 이내에 한번이라도 정밀검사를 받은 경우, 질병의 치료여부와 관계없이 고지해야 하는 것은 불합리해 이같은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에 따라 정밀검사에서 치료받지 않아도 되는 용종이나 물혹의 경우, 굳이 보험사에 알리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즉 이씨는 유방에 물혹이 있다는 것을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이씨는 이를 보험사에 고지했기 때문에 언더라이팅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현 보험사 청약서상에도 통상 최근 1년이내 의사로 부터 재검사를 받은 사실이 없거나 최근 5년이내에 입원, 수술, 통원치료(7일이상), 30일 이상 투약한 경우가 아니면 관련 내용을 고지하지 않아도 된다고 기재돼 있다.
고지의무 대상이 아니라면 보험사는 보험인수 시 차별적 언더라이팅을 해서는 안된다. ‘고지한 계약자와 고지하지 않은 계약자간’ 형평성 문제가 있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보험사들은 고지한 사람에게만 페널티를 주는 비정상적인 언더라이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언더라이팅은 A생명뿐 아니라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소위 말하는 ‘빅 3’ 생명보험사는 물론 삼성화재, 현대해상, 동부화재,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빅 5’ 손해보험사들도 다양한 이유를 들어 부담보로 빼거나 보험가입을 거절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형평성에 어긋난 언더라이팅이 향후 보험금 지급시 대량 민원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미확진 질병에 대해서는 고지의무가 없다는 게 대법원의 판례 임에도 보험사는 고지에 충실한 사람에게만 페널티를 적용하고 있다”며 “이는 보험금 지급 때 계약자간 형평성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회가 다변화하고 있는데도 고지의무 관련 내용은 여전히 애매하거나 불명확해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앞서 대법원은(주심 김지형 대법관)은 보험계약 전에 의사로부터 특정 질환에 대한 검사가 필요하다는 소견 등을 받았더라도 추가검사, 또는 치료가 없었다면 계약 전 고지사항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즉 확진 받지 않은 질병은 고지의무 대상이 아니라는 게 대법원 해석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금감원은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거나 ‘수수방관’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와 관련 금감원 보험민원팀 관계자는 “(2010년 고지의무 시행 세칙 개정에 대해) 잘 모르겠다. 아는 바가 없다. (관련 사항이 대량 민원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민원이 접수되면 그때가서 검토해 보겠다”라고 말했다.
금감원 보험상품감독국 관계자도 “보험사가 (단순 용종 등) 고지의무 대상이 아닌 것으로 고객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는 게 원칙”이라면서도 “하지만 보험사의 고유 권한인 언더라이팅을 규제하는 것도 민감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보험사가 고지의무 사항을 마음대로 추가·확대 운영할 수 없도록 심사제도를 도입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작동치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보험업계 일각에서는 고지의무에 대한 불명확한 표현을 구체화하고 알릴의무의 범위를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다.
보험권 관계자는 “보험계약자의 권익 제고와 민원 예방 등을 위해 고지의무 사항을 개정했음에도 여전히 애매 모호한 측면이 있다”며 “정밀진단 사례인 용종, 물혹의 경우만 놓고보더라도 고객 혼란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따라서 용종이나 물혹의 경우 보다 명확화 작업으로, 1㎝ 이상의 용종만 고지하게 하든지, 단순 용종의 경우 보험금 지급 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보다 구체화한 부연설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보험권 다른 관계자는 “고지의무 시행세칙이 현재의 보험환경을 반영치 못하는 측면이 있다”며 “감독당국은 고지의무 시행세칙 개정을 다시한번 검토해 볼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매경닷컴 류영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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