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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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
정호승
하늘다람쥐 한 마리
가을
산길 위에 죽어있다
도토리나무 열매 하나
햇살에
몸을 뒤척이며 누워있고
가랑잎나비 한 마리
가랑잎
위에 앉아 울고 있다
가을 -
조병화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돌아오고 있습니다
푸른 모자를 높게 쓰고
맑은
눈을 하고 청초한 얼굴로
인사를
하러 오고 있습니다
"그동안 참으로 더웠었지요" 하며
먼 곳을 돌아돌아
어려운
학업을 마친 소년처럼 가을이
의젓하게 높은 구름고개를 넘어오고 있습니다
가을바람 -
강소천
아람도 안 벌은 밤을 따려고
밤나무
가지를 흔들다 못해,
바람은
마을로 내려왔지요.
싸릿가지
끝에 앉은 아기잠자릴
못
견디게 놀려주다 그도 싫어서,
가을바람은
앞벌로 내달렸지요.
고개
숙인 벼이삭을 마구 디디고
언덕빼기
조밭으로 올라가다가,
낮잠
자는 허수아빌 만났습니다.
새
모는 아이 눈을 피해가면서
조이삭
막 까먹는 참새떼 보고,
바람은
그만그만 성이 났지요.
저놈의
허수아비, 새는 안 쫓고
어째서
낮잠만 자고 있느냐?
후여후여
팔 벌리고 새를 쫓아라.
가을바람에
허수아비는 정신차렸다.
두
팔을 내저으며 새를 쫓는다.
새들이
무서워서 막 달아난다.
가을바람
오늘은 좋은 일 하고
마음이
기뻐서 막 돌아갑니다.
머리를
내두르며 돌아갑니다.
가을밤 -
윤석중
문틈에서
드르렁드르렁
"거,
누구요?"
"문풍지예요."
창밖에서
바스락바스락
"거,
누구요?"
"가랑잎예요."
문구멍으로
기웃기웃.
"거,
누구요?"
"달빛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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